싱가폴 창이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안디옥성결교회 선교팀 6명을 자카르타 공항에 사뿐히 내려놓았다.
안태룡 선교사 부부의 따뜻한 영접을 받은 날이 2004년 1월 3일이다.
숙소에 도착한 선교팀은 싱가폴의 선교 여행기와 영상 편집을 이튿날 새벽 5시까지 계속하고
잠시 눈을 붙인 뒤 7시에 일어나 교회에서 9시에 예배를 인도하였다.
땟국물이 주르르 흐르는 옷을 입고, 빛바랜 와이셔츠가 누렇게 보이는데
그 위에 넥타이를 멋을 부리느라고 삐닥하게 맨 나이 많은 목사님과
여전히 촌티를 벗지 못한 젊은 목사님 두 분이 사역을 하고 있었다.
형편 없는 건물이지만 이 건물 자체가 본래 목사님의 자택이었는데
한 쪽을 터서 작은 예배당을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서 100m쯤 떨어진 곳에는 족히 300평은 될 회교사원이 있다.
그리고 그 얄궂은 예배당 앞에 있는 개인주택은 깔끔하게 단장되어져 있다.
가슴이 아프다. 옆에 있는 선교사에게 나는 이렇게 말을 던졌다.
“선교사님 이곳은 개인 전도가 쉽지 않는 곳 아닙니까?
그렇다면 스스로 나오게 해야 하는데 볼 것이 있어야 나오지 않겠습니까?
변화된 기독교인의 삶을 본다든지, 자기 집 보다는 깨끗해서 한번 들어가 보고 싶은 건물이 예배당이든지
예배를 인도하는 분들이나 참석한 분들이 자신 보다는 세련되어 보인다든지,
건물 안에 컴퓨터라도 여러대 놓아두고 게임을 하게 하고,
TV와 비디오를 갖다 놓아 기독교 영화를 비치해서 보게 한다든지 해야하지 않겠어요?
나가서 전도하기 어려우면 와서 보게 해야 하는데 볼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예배 후 한국에 글을 보내고 사진을 보내기 위해 PC 방을 찾았으나
이 곳 버카시(BEKASI) 지역에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 자카르타에 있는 인도네시아 국립대학교를 찾아갔다.
학생들이 사용하는 컴퓨터를 빌려 사용하려하니 인터넷 서버가 다운이 되어 사용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우리들은 그 대학교의 학생에게 부탁해서 학교 근처 PC방을 안내해 달라고 했다.
여러 PC방을 갔으나 우리 노트북을 연결해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료를 보내려면 한글 프로그램이 필요한데 노트북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두 시간을 헤맨 우리는 지쳐 버렸다. 그 때 겨우 한 곳을 찾아 우리는 메일을 열어 보았고, 글을 보냈다.
그러나 사진은 들어가지가 않는다. 결국 포기하고 4시간 PC방에서 씨름한 후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월요일 선교팀은 인도네시아의 역사, 문화, 정치, 경제, 교육, 종교, 기독교 전례와 선교현황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화요일부터 목회자 세미나와 저녁에는 평신도 전도 부흥회를 인도하였다.
저들의 모습은 진지했고, 뜨거웠다. 문제는 통역을 통해 강의하고 설교하는 것이 답답할 뿐이다.
영성과 감정이 잘 전달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응은 뜨거웠다.
인도네시아의 영혼을 우리 손에 맡겨 달라고 뜨겁게 기도하였다.
안디옥 지원팀이 왔다. 너무나 반가웠다. 안디옥의 냄새가 너무나 좋다.
그들은 기도의 소식을 가지고 왔다.
24365 무릎 선교사들의 뜨거운 기도와 중보기도팀의 기도가 세계 일주 선교를 돕고 있다는 것이다.
라면도 컵라면도, 된장, 고추장, 멸치, 떡국, 김도 가져왔다. 모두 선교사님께 드렸다.
비디오 공테이프도 가져왔고, 필름도 수십통 가져왔다.
의약품과 모기약, 뱀을 퇴치하는 백반도 가져왔다.
베이스 캠프 안디옥에서 보급품을 갖고 온 안디옥 선교 지원팀이 너무나 좋다.
오늘 저녁은 UBF 선교사의 능력 있는 통역이 설교하는 나를 신나게 했다.
그리고 모여든 인도네시아 그리스도인들이 큰 은혜를 받았다.
집회 후 우리들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새벽 2시
지원팀을 돌려 보내고 글을 쓰다보니 새벽 4시가 되었다.
오늘은 자바섬에서 마지막 세미나가 있다. 세미나는 전도에 대한 것이었다.
예수님처럼 전도하자는 특강을 할 때 앞에 앉았던 60세 가까이 된 목사님은 강의 도중
자신이 금년에는 20명을 꼭 전도하겠노라고 공개적으로 고백을 하여 뜨거운 박수와 함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오후에 PC방에 갔으나 접속이 안돼 그냥 돌아오는데 갑자기 혈압이 오르더니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아내를 다른 차에 보내고 뒷좌석에 누어 가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죽을 것만 같다.
메스꺼워 뇌혈관이 터졌나 걱정이 된다. 더 이상 가면 죽을 것 같다.
자리에서 일어나 달리는 차 안에서 머리를 감싸고 기도를 하였다.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선교지에서 순교자 되는 것 영광입니다.
그러나 반신 불구가 된다면 주님 영광 가리우지 않겠습니까?
혹시 뇌혈관이 터져 피가 나오고 있으면 응고 되지 않고 깨끗이 흘러 내려 제거 되게 해 주소서.
30분 동안 계속 기도하다보니 숙소에 도착했다.
저녁도 먹을 수 없어 침대에 반듯이 누어 있는데 침대의 작은 흔들림도 나를 괴롭힌다.
그래서 아내더러 침대에 앉지 못하게 했다.
주께서 나를 긍휼히 여기셔서 밤 11시경 심한 아픔은 점점 약해졌다.
내일은 새벽 4시 기상 5시 출발해서 칼리만탄 섬으로 가야한다.
갈 수 있을까? 모두들 걱정들이다. 그리고 밤 늦게 와서 일정을 포기하자고 한다.
많은 고민 끝에 일정대로 진행하라고 명령했다.
새벽에 출발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 걸려
칼리만탄섬 폰티아낙에 도착 25인승 버스를 대절했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몸이 아프지만 에어컨이 없는 버스를 대절한 것이다.
나는 어제밤 너무 큰 시달림 때문에 온 몸에 기운이 빠져 나가고
다리가 후들거려 걷는데 발걸음이 가끔 헛 디뎌진다.
찜통 버스에서 땀을 비오듯 흘리며 8시간만에 상가우에 도착했다.
여인숙 같은 호텔에서 샤워를 하고 나니 몸이 조금 나아진다.
선교지원팀과 저녁에 만나 선교에 대한 이야기로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내가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회복된 것이 모두에게 큰 기쁨이 되었나보다.
여기서도 여전히 영상 편집으로 아이들은 밤 늦게까지 고생하고
나도 선교지원팀을 보내고 글을 쓰느라 새벽 1시가 되었다.
이런 과로 때문에 혈압이 올랐을 것이다.
조심해야지 하면서도 정해진 일정이 나를 붙들고 있다.
아침 6시 일어나 샤워하고 가게에서 사온 현지인이 만든 얄굿은 빵과 음료로 아침을 떼우고,
선교팀은 말라리아약을 먹고 모기약을 바른 후, 어제 대절한 버스에 올라 2시간을 갔다.
도로 사정이 엉망이다. 자동차가 갈 수 없는 언덕과 진흙탕에서는 탑승했던 우리들은 내리고,
가지고 간 통나무를 깔고 진행을 하였다.
드디어 상가우 안디옥 교회에 도착했다.
이곳 마을의 집들은 움막이라 이 마을에 벽돌로 지어진 집은 예배당 뿐이다.
동네 사람들이 벌써 예배당 구경오고 더위를 피해 놀러 온다고한다.
개척한 지 1년만에 장년 60가정이 나오고 있고 어린아이 100여명이 나오고 있다.
오늘 헌당예배에는 120여명이 나와 감격스럽게 예배를 드렸다.
이 지역은 상가우에서 떨어진 에스빼두아 지역이다.
전기불도 없고 식수도 빗물을 받아 먹고 사는 오지이다.
문화 혜택은 전혀 받지 못하고 있고, 농사를 지어 살고 있다.
식사는 밥과 소금에 절인 나물 하나가 대부분이다.
주변에 약 650가구의 다약 부족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인도네시아는 320개 부족이 살고 있는 다민족, 다종교국가이다.
그러나 무슬림 국가 중 세계 최대의 회교도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이다.
그래서 종교 갈등도 있다. 요즈음 정부는 중립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또 기독교 인구는 점점 늘고 회교도는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한인 선교사님들과 선교 좌담회를 할 때
인도네시아 교회 지도자들의 신학과 영성은 문제가 있다고,
이곳에서 17년 사역한 선교사님이 말씀한다.
학생들이 1400명 모이는 인도네시아 최대의 신학교 학장이 몸이 아파
무당에게가서 기도를 받고 부끄럼 없이 선교사에게 이야기를 하더라면서
전체는 아니지만 이것이 인도네시아의 신학과 영성의 수준이라고 탄식을 한다.
그러나 지금 인도네시아에서는 곳곳에서 작은 기도운동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 선교사들이와서 이 기도운동의 불길에 기름을 부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내가 그러면 신문에 “아! 인도네시아가 부른다”라고 글을 쓰겠다고 했더니,
아닙니다 “인도네시아가 불타고 있다.”라고 쓰십시요라며 주문을 한다.
오지에서의 삼일 체험은 힘들었어도 유익했다.
인도네시아를 떠나가면서 인도네시아의 선교 전략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첫째, 인도네시아 교회 지도자들의 신학과 영성의 성숙을 위해
한국이 선교사를 훈련시켜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한국인 선교사 100여 가정이 있는데
이미 파송한 선교사들에 대한 충분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셋째는, 이슬람에서 개종한 기독교들이 상당히 많아졌는데
이들을 훈련시켜 이슬람을 정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는 보여주는 선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도 “와 보라”전도하셨다.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회교 사원에 비해 너무 초라하고 주변 주택에 비해 초라한 예배당 건축에도
동기부여와 함께 적절한 지원을 해야 겠으며
그곳에 컴퓨터 까페를 설치하고 비디오방을 설치 개방해서
무슬림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예배당을 찾아 복음을 접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가장 큰 이유는 개인전도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도의 불이 타오르고 있는 인도네시아 선교의 적기이다.
그러나 무서운 장애물도 있다.
6백개가 넘는 무슬림 제자들을 키워내는 학교가 있다.
무슬림 폭동이 일어나 기독교를 공격할지 모른다.
그러나 복음은 언제나 강력한 반대 속에서 염병처럼 퍼져 나갔음을 기억하자.
분명 인도네시아의 선교 미래는 밝다.
인도네시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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